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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전두환부터 지만원까지, 5.18은 어떻게 왜곡됐나(종합)
           

 


전두환 씨는 정말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관련이 없을까.

4월 29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전두환 회고록과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파헤쳤다.

합동수사본부장이자 보안사령관 전두환씨는 12.12 군사 반란으로 정치 실세가 됐다. 유신 독재가 무너진 자리 신군부가 들어서자 전국 각지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나자 정부는 계엄을 확대했다. 광주 시민들은 계엄령 해제와 전두환 퇴진을 외쳤다. 신군부는 이들을 폭력 진압했다.

작전명 '화려한 휴가'의 시작이었다. 단 열흘간 숨진 사람은 192명, 부상자는 수천명에 달했다. 5월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인 9월 1일 전두환씨는 제11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다.

오랫동안 광주의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억눌렀던 그가 법의 심판을 받은 것은 1997년이었다. 대법원은 전두환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죄목은 내란수괴, 내란목적 살인 등 9개에 달했다. 그런데 8개월 뒤 전두환씨는 당당한 모습으로 세상에 걸어나왔다. 고 김영삼 대통령이 국민대화합의 명분으로 특별 사면을 단행한 것.

전두환씨가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 4월 초 발간된 전두환 회고록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5.18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지난 1989년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으로서 자기 잘못을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염치를 아는 창피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기억되고 싶었다. 국민여러분이 내리는 것이라면 죽음의 약사발도 달게 받겠다"고 말했던 그다.

전두환씨는 회고록에서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 그 시기 전남 광주 어느 공간에도 나는 실제하지 않았다"고 기술했고 광주 민주화 운동을 '광주사태'라 칭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전두환 회고록을 통해 당시의 진실을 다시 들여다봤다.

광주 민주화 운동의 최초 사망자인 고 김경철씨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청각장애인이었다. 어머니 임금단씨는 "아무 것도 모르고 맞아죽은 걸 생각하면 미치고 환장하겠다"고 호소했다.

아르헨티아에 살고 있는 김윤식(가명)씨를 만났다. 그는 당시 7공수여단 계엄군이었다. 그는 "우리가 출동하기 전에 권모 중령 대대장께서 트럭 위에서 말씀하시기를 데모는 첫번에 확 기선을 제압하지 못하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상부 명령에 의해 돌격 앞으로 하면 돌격 앞으로 할 수 밖에 없는거다"고 말했다.

육군본부 자료엔 만개 이상의 폭동진압봉과 방석망 지원 요청에 대한 내용이 남아있다. 그는 "당시에 8중대에 있던 유모중사가 대검을 사용하는 걸 봤다. 거의 젊은 애들이니까 자기 대검을 빼서 학생의 다리를 찔렀다"고 증언했다.

그것은 마치 적군과의 전쟁과도 같았다고 한다. 대검을 총에 장착해 시민들을 찔렀다는 계엄군. 특히 5월 21일 금남로에서 군인은 시민들에게 집단 발포를 했다. 누구도 군인이 국민에게 총을 겨눌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병원은 통로까지 환자로 가득찼고 헌혈 행렬이 줄을 이었다.

27일 새벽 신군부는 무장헬기, 장갑차, 자동화기, 수류탄 등 살상무기까지 동원했다. 당시 검안의였던 문형배 교수는 "아비규환이었다. 도청에서 죽은 사람은 다 총맞아 죽은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을 눕혀놨는데 만져보니까 그때 그 젊은 애들 따뜻한 시신을 만졌을 때, 총상 입어 죽어있는 상황을 봤을 때 그때 감정..."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전두환씨는 회고록에서 양민살상은 없었고 시위대가 먼저 무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시민이 뺏은 차량에 군인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관계자는 "시민 차량이 아니다. 기갑학교 군인들이 일개 대대 한대씩 장갑차 지원이 나왔는데 그 장갑차다. 그 장갑차가 퇴각하면서 우리 부대원 깔아 죽였다. 내가 그 현장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현장 취재를 하던 나경택 전남매일 사진기자는 "차모 대위가 통신병한테 '발포명령 어떻게 됐냐'고 했다. 그 뒤 10여분 후에 통신병이 '발포명령입니다' 하니까 군인들이 그대로 발표했다"고 증언했다.

최포 발포 명령자가 누구인지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다. 당시 공수여단 계엄군 소속이었던 사람은 '광주에 내려보낸게 누구냐는거다. 계엄사령관이나 실제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던 전두환 장군이다. 그 두 사람 중 하나 아니겠냐"

이희성 장군은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의 질문에 공수부대나 광주에 투입됐던 계엄군들이 민간인을 학살한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한테 물어본 당신이 잘못됐다. 내가 있어도 있다고 얘기하겠냐. 실제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누가 사격명령 했느냐. 왜 쐈냐 시민들이 이야기 하는데 발포 명령을 내려서 사격한건 별로 없었을거다. 적이 총 쏘니까 그런거다"고 말했다.

전두환씨 역시 과거 청문회에서 "자위권 발동도 가능하다는 계엄사령부의 작전 지침이 지휘 계통을 통해 하달된 것으로 알고 있다. 자위권 발동은 최악의 상황에서만 현지 지휘관의 사태 판단에 따라 당시 위급한 상황에 처한 현지 지휘관들이 자위권 행사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고.."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주변에서 "살인마 전두환"이라는 외침이 들렸지만 그는 준비한 문건만 읽었다.

전두환씨는 여전히 누구도 발포명령을 내리지 않았고 자위권을 발동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자위권 발동에 그가 개입돼 있다는 증거가 있다.

최근 광주 광역시에서는 또다른 총격 사건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5월 21일 그날의 하늘은 평소와 달랐다고 한다. 당시 기독병원에 근무했던 최선희(가명)씨는 헬기에서 병원 쪽에 있던 시민들을 향해 난사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병원에 근무했던 조 모씨도 같은 증언을 했다.

헬기 사격에 대한 목격담은 89년 청문회 때 이미 세상에 알려졌다. 고 조비오 신부가 "헬기에서 스윽 가면서 드르륵 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군에서는 목격자를 고소하는 등 강경대응을 했다. 전두환씨 역시 회고록에서 헬기의 특성을 모르는 악의적 주장이라고 적었다.

지난해 37년간 덮어있던 헬기 사격 진실이 드러났다. 장소는 전일빌딩이었다. 광주시 윤장현 시장은 "의심이 가는 탄흔이 있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를 했다"고 말했다. 8개월의 감식 작업 결과 전일빌딩 10층 실내에서만 170여개의 탄흔을 발견했다. 분명 10층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날아온 것으로 보이는 탄흔은 헬기 사격으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날의 진실에 한발 다가설 때 쯤 헬기 사격과 관련해 할 말이 있다는 제보자의 연락이 왔다. 최형국씨는 "5월 이십며칠이었다. 낮쯤이었다. 총소리가 가까운데서 들리더라. 나가봤더니 바로 위에서 500MD, 내가 군부대에서 정비했던게 와서 기관총을 쏘고 있더라. 무장헬기다. 안내 방송 하려고 띄웠겠냐. 난 그날 분명히 봤다"고 말했다.

김양래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백번 양보해서 자위권을 발동했다 해도 하늘에서 시위대 내지는 하늘에서 민간인 지역에 대해 기총소사가 있었다는 것을 무엇으로 변명할 수 있냐. 그것은 자위권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한 주간지 기자 역시 자신의 취재원 중 헬기 사격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기자에 따르면 헬기 사격을 명령한 것은 3공수 여단장이자 하나회 일원인 당시 최세창 준장이었다. 자위권으로 설명되지 않는 학살을 명령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세창 준장의 부인은 "인터뷰 안하니까 기대도 하지 마라. 우리가 말 안해도 역사의 진실은 30년 50년 밝혀지겠지. 편안하게 살고 있다. 지나간 역사고 지금은 관심 없다"고 말했다.

앞서 만난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 역시 "책임지고 징역까지 가서 7년 형까지 받았다. 그 이상 어떻게 하냐. 4월에 수감돼 한 8개월 쯤 있었다. 내 책임은, 내 죄는 그렇게 다 벌 받았다"고 말했다.

제작진이 "국민을 향해 발포하고 진압한 행동에 대해 정당했다고 보냐"고 묻자 이희성씨는 "그걸 국민으로 보냐. 폭도지. 민주화는 무슨 민주화냐. 엉터리 같은 이야기다"고 말했다. 전두환 씨 역시 지난 2003년 인터뷰에서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다. 계엄군이 진압하지 않을 수 있냐"고 말했다.

지난 4월 17일 5.18 진실 전국 알리기 단합대회가 열렸다. 종북세력이 판치는 이 세상의 원인이 5.18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만원 씨는 이 자리에서 "광주에는 민주화 시위대라는게 존재하지 않았다. 5월 18일 아침 8시에 20사단 지휘부 차량 부대가 광주 톨게이트를 통과한다는 정보가 있는데 그 정보는 극비 중의 극비다. 그 정보를 어떻게 북한특수군 600명이 알고 숨어있다 매복해 턴거다"고 주장했다.

지만원 씨는 또 "5.18 현장에서 촬영된 사진들을 대거 발굴해서 현장에 있는 얼굴들의 478명이 북한에서 출세한 사람들의 얼굴과 똑같다는 것을 밝힌 책이다. 이 책만 외롭게 있는게 아니다. 전두환 회고록에 나왔다. 이 책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영상공학 전문가와 함께 해당 책의 사진들을 분석했다. 그는 "동일인이라고 분석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얼굴이 가지고 있는 균등한 거리, 비율이 있다. 그 요소를 다 배제하고 자기만의 요소 하나를 가지고 분석했다는건 굉장히 큰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한다"고 지적했다.

해당 책이 북한 사람으로 등장해 지만원 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이들은 "우리나라 전선이 그렇게 허접하냐. 600명이 넘어올 정도인데 못 봤다는게? 비행기로 들어왔을까"라고 말했다. 7공수여단 계엄군 역시 "소가 웃을 일이다. 78년도에 무장간첩 세명이 내려왔는데도 세상이 뒤집혔다. 600명이 내려왔다는건 말도 안된다. 만약 그렇게 뚫려서 왔다면 당시 거기 있던 경계근무 전방근무한 사람들 다 모가지다. 내려왔다면 이건 더 큰 문제다"고 지적했다.

팀 셔록 미국 탐사보도 전문 기자는 "1980년 5월 23일 미국 CIA는 북한이 개입할 수도 있지만 현재 북한 내 상황을 보면 징후가 전혀 없다고 이야기 한다. 당시 CIA가 북한군 개입이 전혀 없다고 한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북한군 개입이 조금이라도 잇었다면 미국은 당시 공개적으로 알렸을거다"고 덧붙였다.

김의송 교수는 "5월 22일 신군부 표현에 따르면 광주에서 무장난동이 있는 그 시각에 판문각에서는 남북 총리급 회담을 위한 고위급 회담을 열었다. 단 한번도 광주에서 북한군이 침투해 벌어졌던 난동에 대해 북한에 항의한 사실이 없다"고 지적했다.

5.18 당시 보안사 전 고위급 간부는 "사령관이 참모들을 불렀다. '왜 광주에서 보고가 없느냐'고 했다. 빨리 내려가서 사태를 한번 봐야 할 거 아니냐 해서 헬리콥터 타고 내려가라고 해서 광주 시내 사태를 알기 위해 내려갔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광주 상황을) 다 알고 있었다. 다 알기 위해 사람 내려 보내고 예산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두환 사령관이, 역사가 이것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르겠지만 전두환 사령관이 무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양래 상임이사는 "(전두환씨가) 소준열 당시 전교사 사령관에게 '공수부대의 사기를 죽이지마라. 희생이 따르더라도 조기에 광주를 수습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소준열 사령관은 메모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직접 메모를 본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전두환 씨를 직접 찾아갔으나 집 앞을 지키는 경찰들이 제작진을 막아섰다. 그의 회고록을 정리한 비서관은 "당시 보안사령관은 현장 상황과 상관없다. 회고록을 꼼꼼히 다 읽어보라"고 말했다. 그는 "전두환 대통령께서는 하고 싶고 해야 할 말은 충분히 하신걸로 이해하고 있다. 자꾸 되풀이하지만 더이상 통화가 무의미하다"며 전화를 끊었다.

독일에서는 홀로코스트, 유대인 대량학살에 대해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사람들을 형사처벌하고 있다. 철저한 반성이 없으면 역사가 되풀이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이
계속되고 있다. 37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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