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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쐈다 총알 떨어질 때까지 조준사격에 시민 수십명 쓰러져”
5·18 도청앞 집단발포 공수부대 현장 지휘관의 최초 고백

 

5·18 당시 광주 금남로 전남도청 앞에서 시위 군중을 향한 공수부대의 집단발포가 있기 전 군(軍) 내부적으로 조직적인 실탄분배가 있었다는 진압군 지휘관의 첫 증언이 나왔다.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이 지난 1996년 검찰에서 진술했듯, 실탄 분배는 발포명령으로 간주할 수 있는 행위다. 대대본부 측에서 공수부대 곳곳을 돌며 군 간부들에게 실탄을 분배했다는 점에서 상부 명령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행위로 봐야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도청 앞 집단발포에 대해 “군의 자위권 행사로, 우발적 발포”라는 그동안의 군 입장과도 배치되는 증언이어서 진상규명 요구가 거셀 전망이다.
5·18 당시 특전사 11공수여단 63대대 소속 지대장(장교 1명·부사관 등 12명으로 11·13여단만 편제)으로 광주에 투입됐던 윤성식(가명·60·당시 중위)씨는 지난 6일 광주일보와 만나 1980년 5월 27일 새벽 기습적으로 자행된 도청진압작전(상무충정작전)의 경우 ‘작전 명령에 따른 명백한 학살행위’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5월 21일 도청 앞 집단발포 역시 시위에 나선 무고한 시민을 향해 군이 총탄을 쐈다는 점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라는 심경도 밝혔다.
윤 씨는 이날 2시간여에 걸쳐 국내 한 섬에서 진행된 광주일보와 인터뷰에서 “80년 5월 21일 낮 공수부대의 첫 발포는 시위대 버스가 금남로에서 우리가 있던 도청 방면으로 달려들 당시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나는 ‘무릎 쏴, 엎드려 쏴’ 자세로 버스 운전기사와 버스 바퀴 등을 조준사격했다. 당시 시민들은 총을 먼저 쏘지도, 총을 들고 있지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는 물론 지금도 그 일을 무척 후회한다”고 말했다.
윤씨는 “집단 발포가 있기 전 대대본부 행정병 2∼3명이 돌아다니며 장교와 부사관 등 간부들에게 실탄을 분배했다. 우리 63대대에 간부가 100여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분배된 실탄은 2000발 안팎이었을 것”이라며 “실탄 분배의 형식과 의미에 미뤄 이는 상부의 명령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당시 불상사가 일어날 것 같아 (지휘부에서)도청 철수명령을 내려주길 바랐지만 입 밖으로 꺼낼 순 없었다. 철수명령이 내려졌으면 발포도, 시민 희생도 없었을 것”이라고 지휘부를 원망했다.
윤씨는 5·18민중항쟁 당시 사태 악화 배경의 하나로 월남전(베트남전쟁) 참전 경험이 있는 하사관(부사관)들 중 일부를 지목했다. 그는 “시민들을 대검으로 찌르고 머리를 진압봉으로 강타하는 등 악랄한 진압을 펼친 군인들 일부가 월남전에 다녀왔던 하사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당시 일부 하사관들의 경우 인명살상 경험이 있는데다 나이나 전투력이 월등해 솔직히 통제가 안 됐다. 책임을 떠넘기는 게 아니라 그런 경우가 많았고 사실이 그랬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씨는 자신의 부대가 광주에 투입됐던 5월 19일 광주는 평화로웠다고 기억했다. 그는 “시위에 나선 광주 시민들은 폭도가 아니라 진짜 시민이었다. 북한군이 당시 광주에서 활동했다고 전두환이 주장했다는데,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건 전두환의 망상”이라고 단언했다.
윤씨는 “당시 광주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전두환과 정호용 등 신군부 핵심이 정권 찬탈을 위해 배후 조종한 일이라고 세상이 다 알지 않나?”라면서 “전두환이 진실을 밝히고 사죄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도구로 쓰여 살상을 저지른 우리 공수부대원들이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진실을 말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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