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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회고록을 검증한다②] "1980년 5월 21일 오전에 무기고 습격"…시간을 왜곡하다
    
     "무기고 습격이 5월 21일 오후 1시 이후에 시작됐다고 하는 시민군 측의 주장과 달리 그날 오전부터 이미 무기고 습격이 진행됐다는 기록들이 있다. 정OO 나주읍 금성파출소장은 1980년 7월 16일 전남합동수사단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5월 21일 10:00경 난동분자 4명이 탄 짚차를 선두로 뒤따라 4~50명이 GMC에 분승하고 파출소 앞에 이르러 뒤따라오던 GMC가 파출소 안으로 돌진, 기물을 파괴하고…"

- 전두환회고록 1권 p.403

"전남 영암경찰서 신북지서 예비군 무기고가 공격받던 상황에 대해 홍OO 31사단 61훈련단 704관리대대장은 1995년 6월 15일 검찰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5월 21일 10:30경 영암지역으로 들어오자마자 길목에 있는 영암경찰서 신북지서 예비군 무기고에 들어가 무기를 탈취한 것입니다.>"

- 전두환회고록 1권 p.403

● "오전부터 무기고 습격", 단순한 시간 문제가 아니다

전두환회고록에는 1980년 5월 21일 '오전'부터 시민군이 무기고를 습격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시민들이 무기고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시점을 놓고 전두환 씨와 5·18 재단 측이 법적 다툼을 벌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단순한 시간 다툼이 아닙니다. 전두환 씨는 회고록에서 무기고 습격 시간을 '오전'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그날 오후 1시 도청 앞에서 계엄군이 집단 발포한 것은 정당했다는 식으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30년 전 국회에서 같은 논란이 벌어진 바 있습니다. 시민군이 먼저 무기고를 습격해, 계엄군이 발포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무기고 습격 시간은 반드시 '오전'이어야만 합니다.

실제로 전두환회고록을 보면 "시민군 측은 5월 21일 오후 1시 도청 앞에서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사격을 하자 그에 대항하기 위해 무장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결국 무기고를 털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무기고 습격과 무장투쟁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지도부의 선동과 사전 계획이 있었다는 진술이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시민군은 계엄군의 사격에 대응하기 위해 무기를 탈취한 것인데, 전두환 씨는 그게 아니라 시민군이 먼저 무기를 탈취해서 계엄군이 사격을 했다는 주장인 것입니다.

● 전두환 씨 측 "5·18 수사 당시 진술조서를 인용"

이 무기 탈취 시간에 대한 논란도 법원의 출판·배포 금지 가처분 사건에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전두환 씨 측은 법원에 낸 답변서에서, 무기 탈취 시간이 5월 21일 '오전'이라고 주장한 근거를 이렇게 제시했습니다. "5·18 사건 수사기록에서 나주읍 금성파출소장과 31사단 61훈련단 704관리 대대장에 대한 진술조서 중 시위대의 무기고 습격에 관한 부분을 발췌하여 인용한 것이고, 5·18 수사기록 중 다른 사람의 진술 내용을 단순 인용한 글"이라는 것입니다. 전 씨 측은 특히 "이런 진술은 수사기관이 5·18 수사를 위해 작성한 신문조서이므로 진실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보아야 하고 그밖에 달리 허위 진술로 의심할 어떠한 사정도 발견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 '오전'에 습격됐다고 주장한 사람은 두 명

전두환 씨 측에 따르면, 5월 21일 무기고 습격이 '오전'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둘입니다. 당시 나주읍 금성파출소장이 한 명인데, 이 사람의 진술이 5·18사건 검찰 수사기록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당시 금성파출소장이 그 진술을 한 것은 95년 검찰 수사 때가 아니라, 1980년 7월 16일 전남합동수사단에서입니다. 1980년 5·18 직후의 진술이 95년 검찰 수사기록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전남합동수사단'은 지난해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80명이었는데, 보안사 현역 11명과 퇴직 8명, 헌병 현역 6명과 퇴직 14명, 안기부 현역 3명과 퇴직 4명, 경찰 현직 20명과 퇴직 4명, 군 검찰 퇴직 7명, 검찰 현직 3명"으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내란 체계도'를 그린 것이 이 전남합동수사단입니다. 전남합수단이 조사한 금성파출소장의 진술을 있는 그대로 믿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취재진은 당시 금성파출소장과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무기고 습격이 '오전'이었다고 진술한 다른 한 사람은 704 관리 대대장입니다. 이 사람이 "5.21 10:30경 영암 지역으로 들어오자마자 길목에 있는 영암경찰서 신북지서 예비군 무기고에 들어가 무기를 탈취한 것입니다"라고 진술했고, 그것이 95년 검찰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오전'이라는 주장은 이 진술조서에 남아있을 뿐 검찰이 방대한 수사를 종합해 1995년 7월 18일 발표한 최종 수사 결과에는 빠져 있습니다.

● 1995년 검찰 수사 결과, 최초 무기 피탈은 '13시'

검찰은 당시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최초 무기 피탈 시간을 명기했습니다. 시위대는 5월 21일 차량을 이용해 광주 인근으로 진출해 무기를 확보, 무장했는데,

13:00경 광산 하남파출소에서 카빈 9정이 탈취됐고,
13:35경 화순 소재 4개 파출소에서 총기 460정과 실탄 1만 발을 탈취했고,
14:00경 나주 함평지서 무기고에서 카빈 20여 정을 탈취하고,
15:35경 화순광업소에서 카빈 1,108정을 탈취했다.

검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시위대는 이 무기를 가져와 광주공원 등에서 사용 교육을 실시했고, 지프차를 타고 시내를 돌면서 상황을 전파했으며, 17:00경에는 광주공원에서 총기 사용 교육을 받은 시위대가 조를 짜서 정찰, 도청 감시, 외곽도로 경계 등의 임무를 부여 받고 시내 요소에 배치되기 시작하는 등 "이른바 시민군이라 불리는 무장 시위대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고 돼 있습니다. 최초로 무기고가 습격된 건 '오전'이라는, 704 관리 대대장의 진술은 검찰의 최종 발표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진술에 신빙성이 있었다면, 검찰 발표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 "오전에 습격"…허위로 의심할 사정이 없다?

전두환 씨 측은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이 두 사람의 진술을 허위로 의심할 어떠한 사정도 발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실과 다릅니다. 금성파출소가 오전 10시에 습격당한 것은 사실일까. 허위로 의심할 만한 몇 가지를 추려봤습니다.

① 취재진이 전남지방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예비군 무기 탄약 피탈 상황' 문건에 따르면, 1980년 5월 21일 나주읍 금성동의 피탈 시간은 14:30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무기 탄약고의 담벽을 군 트럭 후면으로 충격 파괴 후 침입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남평과 산포의 피탈 시간은 13:30으로 되어 있습니다. 오전 기록은 없습니다.
나주 금성동의 무기 피탈은 14:30 (예비군 무기 탄약 피탈 상황, 전남지방경찰청)② 1980년 전남경찰국이 작성한 '집단사태 발생 및 조치사항' 문건에 따르면, "21일 15:00 나주 산포, 영강, 금성, 노안에서 총과 실탄을 탈취, 버스 7대로 광주 진출 중이라고 함(14:15경 출발했다 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15:00 금성에서 실탄 탈취해 광주 진출 중” (집단사태 발생 및 조치상황, 전남지방경찰청)
③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발간한 '1980년대 민주화운동'(1987) 문건에 따르면, "오후 2시경 시위대의 차량은 무기 탈취를 위해 지방으로 빠져 나감. 나주 금성동파출소- M1 소총 2백 정, 카빈 소총 5백 정, 탄약 5만 발"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광주에서 지방으로 빠져 나간 시각이 오후 2시라고 되어 있으므로, 이 시간이 사실이라면 무기고 습격 시간이 오전일 수는 없습니다.

④ 1989년 1월 26일, 국회 5·18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속기록에 금성파출소 관련 시간이 나옵니다. 중요한 내용이라서 그대로 옮겨봅니다. 당시 평화민주당 이해찬 의원의 말입니다.

"국방부에서 작성한 교훈집에 보면, 최종적으로 정리된 자료입니다. 여기 자료에 보면 나주 금성파출소가 공격을 받은 것은 21일 3시30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국방부가 자체에서 작성한 자료에 3시30분으로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부가 내무부에다가 다시 조사를 의뢰해서 11시로 피탈되었다, 라는 자료를 만들어서 그것을 오늘 나온 군인이 갖고 나와서 처음 이 자리에서 공개를 했습니다. 바로 이런 현상을 보면서, 과연 광주에 있어서의 피해와 학살을 규명하려고 하는 것이 정부의 의도인지, 모호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 의도인지 국민들이 판단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회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위 속기록(1989.1.26)⑤ 또 있습니다. 당시 국회 5·18 진상조사특위 1989년 2월 23일 회의에는 금성파출소 무기고를 습격했던 박병률 씨가 증인으로 출석한 적 있습니다. 시간을 언급했습니다.

Q. 무기고에 가서 무기를 접수한 것이 정확하게 시간을 알고 계시다고요?
A. 예.
Q. 몇 시입니까?
A. 2시5분에서 잘해야지 1, 2분 차이가 날 것입니다.
Q.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지요?
A. 21일 제가 점심을 먹고 나가겠다고 얘기를 했어요. 바람 좀 쏘이러 나가겠다고 금방 들어온다고 얘기하면서 21일 나옵니다. 그런데 그때 시간이 거기 기거했던 집에서 나온 시간이 보통 점심이 1시 넘어서 먹습니다. 점심을 먹고 그 얘기를 끝내고 난 시간이 1시45분이었습니다. 1시45분에서 50분, 그런데 거기서 걸어 나온다고요. 그때는 차량 편을 이용한 게 아니라 걸어 나왔는데 2시가 넘었지요. 그래서 넘었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지났을 것이다. 2시가 적어도 5분이 더 지났으면 지났지 그 전은 아니라는 얘기예요. 그런데 먼저 금성파출소를 들어갔어요. 저하고 같이 간 일행은 그 친구들이 나오는 것을 그 앞에서 목격을 한다고요.
(국회 5·18 진상조사특위 1989.2.23 속기록)

박병률 씨는 오후 2시가 좀 넘어 금성파출소에 도착했고, 친구들이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고 했습니다. 누군가 금성파출소에 먼저 와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박 씨는 최근 5·18 트라우마 등으로 몸이 좋지 않아 저희가 직접 통화하지 못했습니다.

⑥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5·18보고서에 따르더라도, 금성파출소의 총기 탈취 시간은 14:00로 나옵니다. 이 시간은 전남도경의 '상황일지'가 출처로 기록돼 있습니다.
금성파출소 무기 피탈 시간 기록은 이렇게 저마다 다릅니다. 14:30, 15:00, 15:30, 14:00, 14:05 등입니다. 14시에서 15시30분까지, 1시간 반 정도의 차이가 납니다. 시간이 서로 다르고, 기록을 남긴 시점도 저마다 다른 만큼, 어느 시간이 정확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만, 금성파출소가 '오전'에 공격당했다는 것은 검찰 발표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의 진술이 있을 뿐, 경찰이나 군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 금성파출소에 갔던 사람과 통화해 보니… "오후 1~2시쯤이었다"

저희는 취재 과정에서 핵심 증언자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앞서 박병률 씨가 1980년 금성파출소에 도착했을 때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즉 먼저 파출소에 도착했었다는 그 '친구'입니다. 김기광 5·18 민주유공자 나주동지회 회장입니다. 1980년 당시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증언이 구체적이어서 통화 내용을 그대로 옮깁니다.
김기광 5.18 민주유공자 나주동지회 회장 (1980년 5월 21일 금성파출소 현장에서 무기고 습격)Q. 나주 금성파출소에 직접 갔었다고 하는데, 전두환 씨는 오전 10시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시간이 기억이 나는지?
A. 보통 2시, 1시~2시경이었을 거예요. 딱 그 사이였을 거예요.

Q. 점심을 먹고 나서인가?
A. 저는 제가 그때 고3이었거든요? 그 전날, 그 날이 이제 4월 초파일이었지 않습니까? 5월 21일이. 그 전날 친구 집에를 놀러 갔었어요. 나주 세지라는 데가 있는데 거기에서 놀다가. 그 다음날 이제 친구 집에서 아침을 먹고 나와 가지고, 이제 동네가 시끌시끌한 거예요. 광주에서 사람 다 죽인다고. '아이고 그럼 이거 큰일 났는데, 집에 가야겠는데' 해가지고 이제 친구 집 동네에서 택시를 타고 나주 죽동이라는 데로 나왔어요. 나주에서 영암 가는 도로인데, 거기까지 택시를 타고 나왔는데.
영암 쪽에서 마침 버스가 이제 각목으로 버스 두드리면서 광주에서 사람들 다 죽는데 젊은 사람들이 뭐하고 있냐고 그러니까 이제 그 버스 타라 이거예요. 도저히 안 된다 우리라도 광주로 올라가자 해가지고 이제 거기서 제가 버스를 탔는데 그때 시간이 아마 거의 점심 때 가까울 때였거든요? 그 버스를 타고 나주 쪽으로 와서 나주 이제 외곽 주변에 노안이라는 데가 있거든요? 노안으로 해서 이제 한 바퀴 돌고 금성동 시내로 막 들어가서 저는 이제 동네에 왔으니까 버스를 내렸을 거 아닙니까? 버스를 딱 내려가지고 사람들이 우우 하니 몰려있으니까 금성동파출소 쪽으로 전부 다 간 거예요.
갔는데 그때 막 군용 트럭 있지 않습니까? 군용트럭이 뒤로 후진을 해가지고 무기고 담벼락을 뒤로 무너뜨린 거예요. 그때 막. 그래가지고 먼지가 자욱하게 담이 무너지니까 먼지가 자욱했을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사람들이 우우하고 들어가서 총을 들었는데 그때 시간이 아마 점심 넘어가지고 1시, 2시 경이었어요.

● 전투교육사령부 군법회의 판결에도 "오후 2시"
“군사법원 판결문에도 오후 2시”(전투교육사령부 계엄보통군법회의 판결문 1980.10.24)취재진은 전투교육사령부(전교사) 계엄보통군법회의 판결문도 입수해 확인했습니다. 1980년 10월 24일 판결입니다. "OOO 등은 5개의 차량에 분승한 성명 불상 폭도 100여 명의 위력을 이용하여 총기를 탈취할 의사로, 번호 불상 광주 고속버스에 승차, 위 100여 명과 합동하여, 동년 5.21 14:00경 전남 나주읍 금성동 소재 나주경찰서 금성동 파출소에 침입, 성명 불상 폭도는 군용트럭 후미로 동 파출소 예비군 무기고 문을 들이 받아 이를 파괴하고…" 5·18 직후 이뤄진 군사법원 판결에서도 오후 2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전두환 씨는 그날 오전부터 금성파출소 무기고가 습격됐다는 주장을 하려면, 믿을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632290&plink=ORI&cooper=DAUM&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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