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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는 5·18 ⑨ 계엄군간 오인 사격
지휘권 다른 교도대·11공수 오인 총격…민간인 보복 사살도
무전 채널 다른 두 부대 효천역 앞서 한낮 총격전 9명 사망
반란 의심 신군부 광주폭격 계획…지휘권자 정호용 ‘모르쇠’


광주항쟁 무력진압 직후인 1980년 5월27일께 전남도청을 찾은 정호용 특전사령관에게 장형태 전남지사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있다.

10일 간의 5·18민주화운동 기간 중 사망한 군인은 23명이다. 이 중 절반에 달하는 9명이 1980년 5월24일 광주시 남구 송암동에서 숨졌다. 이들은 시민군이 아닌, 아군의 공격에 의해 사망했다. 이른바 ‘송암동 오인사격’이다.
◇계엄군 오인사격 전모=5월21일 옛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이후 주남마을로 철수해 광주외곽봉쇄 임무를 수행하던 11공수여단에게 5월 24일 새벽 1시 30분 ‘광주 송정리 비행장으로 이동해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 예비대로서 의명(依命) 기동타격대 임무를 수행하라’는 지시가 하달됐다. 이날 오후 1시30분 임무교대를 위해 20사단 61연대가 도착하자 11공수여단은 육로를 통해 비행장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30여분 두 부대는 광주~나주간 도로에 들어서며 효덕초등학교 삼거리 부근에 도달했다. 11공수여단은 무장시위대를 발견하고 총격전을 벌여 전재수(당시 10세)군, 방광범(13세)군 등이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11공수여단은 시위대가 있던 광주 시내를 피해 외곽길로 비행장에 갔다. 선두에 섰던 63대대가 효천역 앞에 도착했을 때 전교사 보병학교 교도대 병력이 63대대 병력을 무장시위대로 오인, 선두 장갑차와 후속 트럭에 90㎜ 무반동총 4발을 명중시키는 등 집중사격을 가했다.
전교사 교도대는 전날 20사단 61연대와 임무를 교대해 막 투입된 참이었다. 이에 63대대도 대응 사격을 했다. 하지만 높은 지리와 은신처를 먼저 점하고 있던 교도대가 우위였다.


사건 현장에 있었던 63대대 지대장(당시 소위)은 “그 때 오인사격이란 사실이 확인돼 사격중지! 사격중지! 라고 수차례 외쳤는데, 부대원들이 넋을 잃고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면서 “들고 있던 소총 개머리판으로 일일이 대가리를 쳐대니까 서서히 총성이 멈췄다”고 광주일보에 증언했다.
그는 “보병학교 교도대대 애들이 얼마나 명사수냐”며 “매복해서 우리 쪽으로 무반동총을 쏘니까 장갑차고 뭐고 난리가 났다. 차정환 대위(63대대 작전장교) 시신을 봤더니 몸통이 아예 두 동강이 난 상태였다”고 회상했다.


당시 숨진 차 대위는 5·18 항쟁 기간 첫 실탄 사격으로 부상자를 낸 사람이었다. 조창구 당시 63대대장도 오른쪽 팔이 잘려나가는 중상을 입는다.
오인사격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지만 악에 바친 11공수여단은 민간인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인근 마을 청년 권근립(33), 김승후(18), 임병철(25)씨와 박연옥(여·50)씨 등이 총격을 받아 사망했고 노득규(33), 김영묵(45), 최철진(37) 등이 총상을 입었다.
◇반란 의심한 신군부…광주 폭격 계획=광주 505보안대 수사관 출신 허장환(70·당시 상사)씨는 지난 5월 광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5·18 기간 중 광주가 가장 위기였던 순간으로 5월24일 송암동 오인사격을 꼽았다.
허씨는 “사건 직후 이학봉 보안사령부 대공처장에게 비화기전화(감청을 차단한 특수 전화)로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며 “이 처장은 나보고 혼자 전화를 받으라고 말한 뒤 ‘여순사건과 비슷한 것 아니냐. 교도대가 광주시민의 편을 들어 공수부대를 공격했는지 빨리 파악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허씨는 당시 505보안대 소속 수사관 중 자신이 유일한 경상도 출신이라 이 처장이 연락을 한 것 같다고 추측했다.
그는 “공수부대가 광주시민에 밀려 광주외곽으로 철수한 상황에서 윗선에서는 광주 주둔 군부대까지 항쟁에 동조하는 상황을 가장 우려했다”며 “만약 현지 반란으로 인정된다면 광주를 폭격할 수 있다는 말이 보안대 내부에서 돌았다. 실제 계획서는 본 적이 없지만 경기도 오산비행장에 전투기가 출격 대기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고 밝혔다.

5월 항쟁 직후 군 장병들이 파손된 광주시가지를 수습하고 있다. <광주일보 자료사진>




◇지휘권 이원화=5·18 당시 3공수여단 11대대 소속 지역대장으로 광주에 투입됐던 신순용(70) 전 소령은 “당시 공수부대와 31사단 등 일반부대는 무전 채널이 달랐고, 공수부대에만 따로 지시가 내려왔다”고 증언했다.
송암동 오인사격은 지휘권 이원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11공수여단과 전교사 교도대가 같은 무전체계를 사용했더라면 서로 오인할 가능성은 낮았다. 특히 지휘권 이원화는 교전 이후에 명백히 드러난다. 11공수여단은 최웅 11공수여단장에게, 전교사 교도대는 31사단 지휘통제실에 각각 피해사실을 보고 한다. 당시 최웅 여단장은 다른 여단장들과 함께 전교사 사령관실 옆에 마련된 정호용 특전사령관실에 있었다. 정 사령관, 최 여단장 등은 상황이 수습된 후 효천역 오인사격 현장을 살펴본 다음 광주국군통합병원을 방문해 부상자들을 위문했다.


◇정호용 특전사령관 면죄부=몸이 두동강 나는 등 자신의 부하 9명이 처참하게 숨지고, 일부는 팔이 잘려나가는 중상을 입었지만 정 특전사령관에게는 책임이 지워지지 않았다. 지난 1995년 검찰 수사와 1997년 법정에서 ‘자신은 죄가 없다’고 발뺌하는 정 사령관에게 명예를 가장 중시한다는 특전사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 사령관이 5·18에 대해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뚜렷한 흔적은 없다. 소준열 전교사 사령관은 1988년 국회 청문회나 법정에 나와 “광주 재진입작전은 내 책임 아래 이뤄졌다”고 증언했고, 이희승 계엄사 사령관 역시 “지휘권의 이원화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1995년 7월 발표한 수사결과에서 지휘권 이원화는 없었던 것으로 결론 지었다. 검찰은 정 사령관이 작전통제를 받고 있던 예하 공수여단 지휘관들을 격려하고 ‘상무충정작전’을 수행할 특공조를 선정하는 데 관여했지만 지휘권 이원화와는 관련이 없다는 결론이었다.
법원 판결도 이와 같았다. 1996년 법원은 정호용 사령관이 작전통제권자인 전교사령관의 자문에 응하거나 조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수부대 증파 결정, 전교사령관 교체 등 중요 사안 결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봤다. 또 수시로 광주에 내려가 3개 여단장들과 접촉, 진압대책을 논의하는 등 작전지휘에 개입했으며, ‘상무충정작전’ 시행 때는 중요 물품조달과 주요 지점별 특공조 선정 등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 같은 사실만으로 특전사령관이 공수여단에 대해 실질적인 작전지휘권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하며 지휘권 이원화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오인사격에 의한 부대원들에 사망에 대해서는 정 사령관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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