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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임을 위한 행진곡

                                                                    김 상 윤(윤상원기념사업회 이사장)

 

뭐라고? 기순이가 죽었다고?”

이른 아침 서점에 들어선 상원이가 말도 안 되는 소식을 가져왔다.

기순이는 하루 종일 야학 학생들과 야산에서 땔감을 구하러 다녔단다. 아마 크리스마스 전야를 보내기 위해 난로에 넣을 땔감을 구하러 다녔던 모양이다. 너무 피곤해 연탄가스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곤히 자다가 참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서점 문을 허겁지겁 닫고 상원이와 함께 전대병원 영안실로 갔다. 이미 들불야학 학생들과 전남대 학생들 그리고 운동 동지들이 다수 모여 있었다. 모두 망연자실! 여기저기서 우는 소리도 들린다

78년 겨울이면 유신체제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던 혹한의 세월이었다. 양성우시인은 겨울공화국이라는 시로 얼어붙은 동토와 같은 현실의 비참함을 노래했고, 긴급조치9호라는 폭압 통치 속에서 모든 사람들의 입은 굳게 봉쇄되어 있었다. 학생들의 시위가 사라진지 오래되었고, 대학은 이미 병영화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동아리 활동을 통해 광천공단 실태조사를 하고, 들불야학 등을 통해 노동자들의 의식을 깨우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었다.

 

나 역시 75년부터 소위 의식화 학습을 통해 많은 활동인자를 만들어내고 있었고, 777월부터 녹두서점을 만들어 학습팀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윤상원은 의식화 학습에 매우 적극적이었고, 75년부터 학습팀들을 이끄는 실질적인 리더였다. 졸업과 동시에 주택은행 봉천동 지점에서 근무를 하였지만, 교육지표사건 이후 과감히 사표를 내고 들불야학에서 강학(講學-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들불야학 선생들의 호칭)을 하면서 양동신협에 근무하고 있었다.

박기순은 우리와 다른 팀에서 학습을 하였다. 역사를 전공하였지만,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된 오빠 박형선의 영향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게다가 올케인 윤경자는 민청학련 조직의 호남책임자 격이었던 윤한봉의 누이동생이었다. 오빠 박형선은 고향인 보성에서 농사를 지으며 전남지역 농민운동을 일군 선구자의 한 사람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박기순은 민중들이 역사의 주체라는 인식을 확고히 하면서, 노동자들의 삶에 다가가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윤상원 박효선 등과 함께 하루 종일 영안실에 있다가 오후 늦게서야 녹두서점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닫혀있는 서점 문 앞에 전혀 본 적이 없는 두 사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들은 서울 말투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한 사내는 얼굴 한 쪽이 먹물이 든 듯 약간 검었는데 인상이 제법 날카로웠고, 한 사내는 허름한 차림새이나 선비풍에 참 선하게 생긴 모습이었다. 기순이 죽음으로 마음이 상해있던 나는 상당히 퉁명스럽게 그들을 대했던 모양이다. 선한 모습의 사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달래듯 인사를 넙죽한다.

형님! 저 김민기라고 합니다.”

(뭐라? 김민기라고! 아침이슬을 작곡한 김민기?)

그렇다. 김민기는 전라북도 김제인가에 내려와 농사를 짓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듯하고, 또 한 사내는 나중에 알고 보니 서편제를 작곡한 김영동이었다. 퉁명스럽게 대한 것을 사과하면서 기순이 죽음 때문에 과민해진 모양이라고 하니, 그들은 바로 영안실로 가보겠다고 했다. 그때는 모두 형제같은 동지애를 가진 때여서 기순의 죽음이 그들에게도 큰 슬픔이 되었던 모양이다.

저녁 무렵에 엄청난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박기순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식이 시작되었는데, 김민기가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단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쳐도

온누리 끝까지 항상 푸르다~~~~”

김민기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이 노래를 끝까지 불렀단다. 상원이가 전한 바에 의하면, 김민기는 이 노래를 작곡하고 나서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이 노래를 부른다고 했단다. 지난 참여정부가 출범하던 날,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장에 이 상록수가 울려퍼질 때, 나는 눈물을 참느라 혼이 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80년 광주민중항쟁으로 17개월을 복역하고 형집행정지로 출소하였다. 811224, 그러니까 기순이가 죽은 지 딱 3년이 되는 날이었다. 다음 해 2월은 교도소에서 삭발한 내 머리가 아직 다 길지도 않은 때였는데, 망월묘역에서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이 거행되었다. 문병란선생님께서 결혼을 기념하는 자작시를 낭독하시고, 상원이 어머니는 상원의 무덤 위에 쓰러져 몸을 이리저리 뒤틀면서 통곡을 하신다. 나는 마치 상원이를 내가 죽인 것 같은 죄책감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

 

참으로 순수한 이 두 영혼의 결혼식이 거행된지 몇달 후에 만들어진 님을 위한 행진곡’! 이 노래가 그날 이후 학생운동의 시위대 속에서 노동현장 속에서 민중의례에서 그토록 사랑받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런데 이제 와서 이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된 이 노래가 그토록 처절하게 탄압받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두 맑은 영혼들을 위한 진혼곡이 또다시 만들어져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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