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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보'에도 소개된 광주교도소 5·18 사망자..원통한 사연

"이웃이랑 경운기 부속과 벽지를 사러 광주에 다녀오던 중 갑자기 공수부대가 총을 쏘았다."

1989년 3월 14일 국회 광주특위 현장검증 속기록에 담긴 이승을씨 증언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교도소 일원에서 생때같은 목숨을 잃었던 희생자가 평범한 시민이었음을 증명한다.

이씨와 이웃 등 일행 4명이 자동차를 타고 교도소 앞 도로를 따라 전남 담양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계엄군 총격을 받은 때는 1980년 5월 21일 오후 8시께.

       
     
교도소 주변도로 행인·전남대서 끌려온 시민 목숨 잃어
항쟁 끝나고 사라진 사람들, 숫자·신원 알려지지 않아

"이웃이랑 경운기 부속과 벽지를 사러 광주에 다녀오던 중 갑자기 공수부대가 총을 쏘았다."

1989년 3월 14일 국회 광주특위 현장검증 속기록에 담긴 이승을씨 증언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교도소 일원에서 생때같은 목숨을 잃었던 희생자가 평범한 시민이었음을 증명한다.

[5·18기념재단 제공, ]

이씨와 이웃 등 일행 4명이 자동차를 타고 교도소 앞 도로를 따라 전남 담양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계엄군 총격을 받은 때는 1980년 5월 21일 오후 8시께.

일행 가운데 고규석·임은택씨 등 2명이 가슴, 어깨, 허벅지 등에 총을 맞고 현장에서 숨졌다.

이때 숨진 고규석 씨는 '최순실 국정농단'을 폭로한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의 부친이다. 원통한 사연이 고은 시인의 '만인보 단상 3353편'을 통해서도 소개됐다.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건진 이씨 등과 달리 피격 당일 숨진 이웃들 시신은 열흘 만인 5월 31일 교도소 안 흙구덩이에서 발견됐다.

당시 광주시청 청소과 직원들이 교도소장 관사 주변 흙구덩이에서 수습한 민간인 시신은 모두 8구다.

주검마다 고규석·임은택 씨와 마찬가지로 총상이 남아있었다.

항쟁이 끝난 뒤 교도소 주변 야산에서 암매장 시신으로 발견된 운전기사 서만오·최열락씨 등도 총상을 지닌 사망자다.

민간인들이 총을 맞고 숨진 5월 21∼23일 광주교도소에 주둔했던 계엄군은 3공수여단이다.

3공수는 5살짜리 딸을 안고 광주에서 전남 진도로 돌아가던 채소행상 김성수씨 부부에게도 5월 22일 오전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김씨는 하반신이 마비된 어린 딸을 휠체어에 앉히고 1989년 2월 22일 광주특위 청문회에 출석해 참상을 진술했다. 그의 아내가 총격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 뒤였다.

                    

3공수는 전남도청 앞 11공수여단 집단발포로 시민군이 결성되자 5월 21일 오후 4시부터 주둔지인 전남대를 떠나 육군 31사단이 방어하던 교도소로 퇴각했다.

이들 병력은 20사단 62연대와 교대한 24일 정오까지 교도소에 머물며 주변을 지나는 차량과 행인을 향해 총탄을 퍼부었다.

임수원 당시 3공수 11대대장은 1989년 1월 27일 광주특위 청문회에 나와 "각종 차량을 앞세운 시위대가 교도소를 5차례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31사단과 20사단 등 다른 계엄군 부대와 달리 유독 3공수 주둔 시기에만 교도소가 습격당했다는 주장은 5·18 항쟁을 폭동으로 조작해 민간인 학살 책임을 피하려 한 신군부 측 역사 왜곡의 대표 사례로 손꼽힌다.

교도소 일원에서 생을 마감한 민간인 희생자는 3공수 사격표적이 된 행인뿐만이 아니다.

전남대에 붙잡혀있다가 교도소까지 끌려간 안두환·장방환 씨 등이 심하게 얻어맞은 처참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5월 28일 교도소 담장 밑에서 남편 시신을 수습한 안두환 씨 아내는 훗날 광주특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 "군인 3명이 집에 들어와 우리 아저씨를 때리며 끌고 갔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날 공수부대가 철수한 전남대 이학부 건물에 가보니 피가 고여 있고 옷이 말도 못하게 많이 벗겨져 있었다"며 "우리 아저씨 찢어진 옷이랑 신발을 찾아서 끌어안았다"고 회상했다.

                    

5일 5·18민주유공자유족회 등 5월 단체에 따르면 3공수가 전남대에서 퇴각할 때 트럭 2대를 이용해 시민 100여 명을 교도소까지 끌고 간 것으로 추정된다.

5월 단체는 교도소 의무대 약품 수급대장을 통해 이 시기 하루 100여 명 이상 중환자가 치료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37년 전 교도소에서 사라진 시민은 정확한 숫자와 신원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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