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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5·18 ⑥ 도청 앞 집단발포
오후 1시 애국가 울리자 11공수 ‘무릎쏴’ ‘서서쏴’ 조준 사격
전날 광주역서 최초 총격 사망자 발생…시민들 격분
현장 지휘관 “명령 없는 발포 없다” 광주일보에 증언
9월 출범 ‘5·18조사위’ 명령자 규명 주요 목표로


5·18민주화운동의 대표적 사건은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께 자행된 계엄군의 집단발포다. 옛 전남도청에 주둔하던 계엄군이 금남로쪽에 있던 시민들을 향해 총을 난사한 것이다. 계림동(5월19일)과 광주역(20일) 발포와 달리 금남로 발포는 사전 계획, 명령에 의한 것으로 지금도 발포명령자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도청 앞 집단발포를 계기로 광주시민들은 무장을 하기 시작했으며, 이후부터 항쟁의 성격을 띠게 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한 신군부는 이날의 집단 발포에 대해 “폭도들이 총을 쏘고 다니며 계엄군을 위협해 사격할 수 밖에 없었다”며 광주 시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종합보고서, 지난해 10월 전남지방경찰청이 발표한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의 전남경찰 역할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집단 발포 이전 광주시민들은 무장을 하지 않았다. 20일날 광주역 앞 발포로 인해 최초로 총격에 의한 사망자가 발생하자 시민들은 광주 세무서에서 20일 밤 11시~21일 새벽 3시20분 사이 실탄은 놔둔 채 M1 소총 17정만 탈취했다. 실탄이 없다는 사실은 이미 경찰에서 파악하고 있었다.

신군부는 ‘전남도경 상황일지’를 조작하며 총기 피탈 시점까지 왜곡한다. 20일 오전 8시부터 광주시민들이 전남 곳곳 파출소에서 소총과 실탄을 탈취했다는 것이다. 이는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 논리로 활용됐으며 21일 오후부터 본격적인 학살에 들어간다.

1980년 5월21일 옛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직전 모습. 시민군이 희생자를 실은 수레를 끌면서 계엄군에 항의하고 있다. <광주일보 자료사진>






21일 도청 앞 발포 상황을 정리한 군 문서는 현재까지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5·18 관련 군 문서 대부분이 왜곡된 상황에서 증언과 목격담으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

21일 새벽 광주시민들은 시신 2구를 수레에 싣고 도청 앞으로 향한다. 505보안부대의 ‘검시참여결과보고’에 의하면 시신들은 전날 밤 광주역에서 사망한 사람들로, 이중 한명은 허봉씨다. 전옥주·차명숙씨가 시민들에게 시위 참여를 독려하며 시위대는 오전 10시까지 5만여명으로 불어났다.

이날 오전 9시30분께 전옥주씨 등 시민대표 4명은 전남도청에서 장형태 전남지사를 만나 ‘계엄군 투입, 무차별 구타에 대한 공개사과, 연행 학생 및 시민 석방, 금일 12:00까지 공수부대 완전 철수’를 요구했다. 또 장 지사에게 합의 사항을 시위대 앞에 서서 직접 발표해달라고 했다. 권한을 넘는 일이었지만 장 지사는 “그러겠다”고 했다. 장 지사는 40분 뒤 거리로 나가는 대신 경찰 헬기에 타고 “여러분의 요구는 모두 관철시키겠다. 낮 12시까지 계엄군을 모두 철수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장 지사가 헬기 방송을 하기 직전 오히려 공수부대에게는 실탄이 분배되고 있었다. 당시 도청 앞은 11공수여단 61·62대대, 좌우에는 63대대, 7공수여단 35대대가 배치돼 있었다. 오전 10시10분께 63대대 장교와 하사관들에게 1인당 10발씩 실탄이 지급됐으며 실탄을 지급받은 부대원들은 도청 앞에 있던 부대원과 교대했다.

장 지사의 헬기 방송을 들은 안부웅 61대대장은 여단 본부에 사실 여부를 물었고 “철수 계획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도청 집단발포 후 무장한 시민군






정오가 됐고 공수부대가 꿈쩍도 하지 않자 광주시민들은 술렁거렸다. 뒤늦게 속은 것을 알아 챈 시민들은 도청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도청 앞 발포의 도화선은 공수부대 사병이 공수부대의 장갑차에 깔려 사망한 사건이었다.

오후 1시께 시위대는 공수부대의 철수를 요구하며 도청으로 접근했고 일부 시민들이 화염병 2~3개를 시위진압 지원에 나섰던 육군 기갑학교 소속 장갑차에 던진다. 불이 붙은 장갑차는 갑자기 뒤로 후진했고 이를 미처 피하지 못한 63대대 8지역대 소속 무전병 권용운 일병이 장갑차에 깔린다. 당시 목격자들에 의하면 권 일병은 장갑차의 무한궤도에 하반신이 깔려 상체가 위로 들려진 채 피를 토하는 처참한 모습으로 즉사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모르는 시위대는 버스 2대를 운전해 도청으로 돌진했다. 이 중 1대는 상무대쪽으로 돌아 나갔지만, 다른 1대는 10여명의 공수부대원이 사격을 가해 운전사가 사망하면서 분수대를 들이받고 멈췄다.

오후 1시 정각 도청 옥상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애국가 시작 소리에 맞춰 공수부대들은 ‘무릎쏴’ ‘서서쏴’ 자세를 취했고 동시에 사격이 시작됐다. 5·18 연구자들은 이전까지의 사격이 갑작스레 이뤄졌다면 1시 집단 발포는 명령에 따라 조준 사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공수부대는 부상자 등을 부축하기 위해 나오던 시위대에게도 사격을 가했다. 또 주변 건물로 저격 요원들을 배치해, 시위 주동자나 돌진하는 차량에도 총을 쐈다. 5·18을 경험한 광주시민들은 오후 1시30분께 태극기를 든 청년이 상체를 내민 채 아세아자동차에서 탈취한 장갑차를 타고 도청 쪽으로 돌진하다 관광호텔 앞에서 총을 맞고 사망한 순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11공수여단 63대대 소속 이모(61) 전 중위는 광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시위가 격화되면서 APC장갑차가 도청 방면으로 후진하다 몇몇 장병이 오징어포처럼 눌려 죽고 그때부터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다”며 “당시 대대장들이 고함도 치고 울먹이기도 하면서 상부에 발포권을 달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이 전 중위에 따르면 대대장들의 발포권 요청 뒤 얼마 안 돼 대대본부 장병들이 부대원들 사이를 돌면서 실탄을 분배했다. 대치 중이던 시위대 쪽에서 버스가 공수부대를 향해 달려드는 순간 이곳저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포가 시작됐다.

이 전 중위는 “나는 발포 명령을 듣지 못했지만 발포권 요청 이후 조직적인 실탄분배가 있었고, 명령없는 발포는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발포권이 하달됐다고 보는 게 맞지 않겠냐”라고 주장했다. 신군부가 주장하는 자위권 차원의 우발적 사격이있었다는 논리와 정면의 배치되는 발언이다.

아직까지 도청 앞 집단 발포로 인한 정확한 희생자 수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육군본부, 31사단, 전교사 상황일지에는 계엄군의 피해 상황만 적시돼 있을 뿐 시민들의 사망 보고는 찾아볼 수 없다. 발포 주체인 7공수여단과 11공수여단의 전투상보에는 도청 앞 발포상황 자체가 누락돼 있다.

행방불명자 암매장과 더불어 도청 앞 집단 발포 명령자를 찾는 것은 ‘5·18민주화운동을 위한 진상규명 특별법’에 의해 오는 9월 출범하는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주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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