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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유혈충돌 막은 고 이준규 목포서장 명예회복
시위대 몰려와 경찰 병력 철수.총기 방아쇠 뭉치 제거
경찰 간부 중 유일하게 파면… 신군부에 구속.고문



고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의 생전 모습. 유족 제공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강경진압 명령을 거부했다가 ‘파면’ 당한 고(故)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의 명예회복이 이뤄질 전망이다.

11일 이준규 서장 유족에 따르면 지난 6일 국가보훈처로부터 이 서장이 5.18민주유공자로 결정됐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이 서장은 5.18 때 목포경찰서장으로 재직했으며, 신군부의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당시 경찰 간부 중 유일하게 파면을 당한 인물이다.

지난해 전남경찰청이 발표한 ‘5.18보고서’에는 5.18 직후 신군부가 고 안병하 전남경찰국장을 비롯한 지휘부 13명에게 책임을 물은 것으로 나온다.

당시 안 경찰국장은 직위해제 처분을 받았다. 계엄군에게 항의했다가 폭행당한 것으로 알려진 안수택 작전과장 등 간부 11명은 의원면직됐다. 각종 기록과 유족 증언 등에 의하면 사실상 강제 해직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나마 외형적으로 이들은 스스로 사퇴한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반면 유일하게 파면을 당한 이 서장의 사정은 달랐다. 공무원을 강제로 퇴직시키는 중징계처분인 파면은 그에게 크나큰 ‘불명예’를 안겼다.

신군부는 이 서장에게 외곽저지선 보호와 자위권 행사에 소홀했다는 혐의를 씌웠다. 5.18 직후 계엄사령부에 구속돼 3개월 가까이 고문당했다. 이후 군사재판에 회부된 그는 선고유예를 받고 석방됐다. 재판 당시 목포시민들은 이 서장을 석방하라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고문후유증에 시달리던 이 서장은 지난 1985년 58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이 서장의 유족은 그가 마지막까지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전했다. 경찰 간부였지만 파면 당해 불명예 퇴직을 하게 되면서 현충원 등 국립묘지에도 못 묻혔다. 이 서장은 현재 천안공원묘원에 잠들어있다.

이 서장의 사위인 윤성식씨는 “장인이 억울함 때문에 겪은 일을 기록으로 남기려 했지만 너무 일찍 돌아가시면서 그 마저도 못했다”고 안타까워 했다.

유족들은 이 서장의 판단으로 인해 5.18 당시 계엄군과 시민군의 교전이 있었던 광주가 피로 물든 반면 목포는 희생자 없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신군부는 당시 경찰에 총기 사용을 통한 시위 진압을 명령했지만 이 서장은 이를 따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대응할 것을 지시한 안병하 전남경찰국장의 지시를 충실하게 이행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이 서장은 무장한 시민군들이 목포시내에 진입했을 때는 정면 충돌을 피하고자 경찰 병력을 목포서에서 철수시켰다. 이와 함께 무기를 탈취당하지 않기 위해 총기의 방아쇠 뭉치를 제거하고 배에 실어 목포 인근 섬에 나눠 옮겼다.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 서장 유족은 “인명피해를 최소화 한 것을 모범사례로 보기는커녕 당시 경찰 간부 중 유일하게 파면당하고 가혹한 고문까지 당했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목포에서 유혈사태를 바랐던 신군부의 기대와 달리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자 이 서장에게 가혹하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유족들은 이 서장이 작고한지 33년만에 5.18유공자 신청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밝혔다. 사위 윤씨는 “최근 고 안병하 전남경찰국장의 명예회복이 이뤄진 것을 알게되면서 장인의 명예를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유족들은 영영 이 서장의 명예를 되찾는 게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일부 보상을 받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누구도 이 서장이 했던 일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고 그냥 잊힌 존재가 됐다. 유족들까지 아픔을 지우고자 이 서장이 쓴 일기나 수첩 등 유품을 전부 처분해버렸다.

사위 윤씨는 “세상이 바뀌면서 이제야 시민들을 보호하려 했던 장인의 노력이 알려지게 된 것 같다”며 “유족들의 한이 조금이나마 줄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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